에이전트 시대의 마인드셋 — 우울함에서 시작된 전환
'내가 지금까지 해온 코딩은 다 뭐였지?' 코딩을 예술로 여겨 온 사람이 겪은 실존적 위기와, 그것을 넘어선 태도 전환에 관한 팟캐스트 대화를 정리했다.

뒤늦게 팟캐스트 한 편을 봤다. 진행자 두 분이 래블업의 신정규 대표를 초대한 회차였는데, 내용이 너무 공감돼 정리해 둔다. 본격적인 AI 에이전트 시대를 맞아 바뀌는 마인드셋에 관한 이야기다.
이 대화의 축은 감정의 곡선이다. 코딩을 예술로 여겨 온 사람이 겪은 실존적 위기에서 시작해,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태도 전환을 거쳐, 하루에 수억 개 토큰을 태우는 일상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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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 프로그래머의 정체성 위기와 감정적 변화 — AI가 코딩을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깊은 우울감과 무력감. 평생 쌓아온 기술과 노력이 부정당하는 듯한 실존적 위기. 그리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태도 전환으로 위기를 넘어 새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
2. 코딩과 업무 방식의 재정의 — AI 시대의 코딩은 직접 코드를 짜는 행위가 아니라 AI에게 지시하고 관리하며 위임하는 역할로 바뀐다. 여러 모델을 동시에 굴려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방식. 문서화·테스트·패키지 생성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던 작업의 자동화.
3. ’토큰 사용량’이라는 새 적응 지표 — 토큰 사용량이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척도가 된다. 자기 시간을 AI의 토큰 리필 주기에 맞추는 데까지 간다. 해커톤에서 비개발자가 우승한 사례는 AI가 기술의 장벽을 낮추고 있음을 보여 준다.
4. 정리 — 적극적으로 AI를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것이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아래는 대화 내용을 읽기 좋게 다듬은 것이다.
1. 정체성 위기
[진행자] 저희 팟캐스트가 제프리 힌튼의 우울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신정규 대표님도 몇 달 전 굉장히 우울한 시기를 겪으셨다고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고, 이 변화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신정규] 제가 4월쯤에 굉장히 우울했어요. 회사 문제 같은 건 아니었고, 좀 더 근본적인 이유였습니다. 작년부터 AI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Gemini 같은 모델로 코드를 짜거나 도움을 받곤 했습니다.
올해는 제가 주도해서 세 개의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2월에는 베어메탈과 IoT 클러스터를 관리하는 도구를, 4월에는 도커와 비슷한 도구를 혼자서 만들었습니다. 6월에는 회사 전체의 워크로드를 관리하는 도구를 만들었고요.
그런데 프로젝트마다 느낌이 달랐습니다. 2월에는 ChatGPT를 옆에 띄워놓고 질문하고, 코드 받고, 대화하며 작업했습니다. 4월에는 GitHub Copilot이나 Cursor 같은 편집기 통합 도구를 썼고요. 6월에는 클로드를 쓰면서 제미나이 CLI 베타 테스터로도 활동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큰 도움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신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4월에 두 번째 프로젝트를 할 때쯤, 구글 클라우드 넥스트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인간이 코딩하는 시대가 끝날 거라는 예측이었죠. 경영진은 이미 그런 판단을 내리고 “AI가 코딩하는 시대에 문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같은 의제를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씩 우울해지기 시작했는데, 6월에 코딩을 하다 보니 정말 코딩의 정의가 곧 바뀌겠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물론 그게 제 작업량이 줄어든다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과거에 진공관을 다루던 사람들이 천공 카드를 쓰게 되고, 라인 에디터를 쓰던 사람들이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게 된 것과 같은 변화죠. 저는 그 정도 스케일의 변화가 오고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저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여러 연구를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오픈소스에 많이 기여한 프로그래머입니다. 코드를 정말 많이 짰고, 코드를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났고요. 그런데 그 순간, 제 인생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듯한 경험을 한 겁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코딩은 다 뭐였지?’ 하는 허탈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저는 코딩이 예술과 같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진행자] 바둑을 예술로 여겼던 이세돌 9단 같은 심정이셨겠네요.
[신정규] 맞습니다. 한 15년 전쯤 제가 태터툴즈를 만들 때, 동료들에게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을 선물한 적이 있어요. 읽으면서 ‘이건 코딩에 대한 책이구나’ 싶어서 선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감정이 완전히 뒤바뀐 것 같았죠. “나는 인생에서 뭘 해온 걸까?” 하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5월에 휴가를 내고 구글 I/O에 가서 JAX 미팅이랑 케라스 10주년 파티에 갔는데, 10년 넘게 알고 지낸 케라스 개발자들과 “우리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JAX 관련 연례행사인 DevLab에도 갔습니다. 행사 첫날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다들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러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과연 2년 뒤에도 이런 모임이 있을까?”
정말 우울했는데, 그때 딱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6월부터는 출장을 가서도, 프로젝트를 할 때도 클로드를 미친 듯이 썼습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니 “나만 이렇게 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전사 해커톤을 열었습니다.
보통 해커톤은 밤샘 행사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코딩을 안 하는 시대가 오면 굳이 길게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한 시간짜리 해커톤’**을 연 거예요. 사전에 30분 설명, 전날 15분, 당일 30분 설명해 주고, 딱 한 시간 코딩하고 30분 시상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등을 한 분이 프로그래머가 아니었어요. 2, 3등도 비개발자였고요. 그걸 보면서 깨달았죠. ‘어차피 올 변화라면, 내가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겠다.’ 그때부터 매일 수억 개씩 토큰을 태우고 있습니다.
[진행자] 네, 이건 매우 중요한 지적입니다. 세상의 변화를 막을 수 없으니, 차라리 더 빨리 움직이자는 CEO의 결단인 거죠.
2. 업무 방식의 재정의
[신정규] 요즘은 전혀 우울하지 않아요. 저희 회사에서는 원래 클로드를 종량제로 썼는데, 해커톤 이후로는 누구나 쓸 수 있게 정책을 바꿨습니다. 사용량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위해 개인용 정액 요금제인 ’클로드 맥스’로 전환했죠. 상위 5명에게 “당신들은 일주일에 몇백 달러씩 쓰고 있으니 이걸로 바꾸세요”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꾸고 나니, 제가 2등인 거예요. 1등도 아니었어요. 하루에 1억 8천만 토큰을 태웠는데도요. 1등은 현장에서 일하는 솔루션 아키텍트였는데, 현장에서 하는 모든 일을 자동화하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를 전부 코드로 바꾸고 있는 거죠.
자동화는 코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클로드로 프레젠테이션 초안을 만드는 작업도 하죠. 파워포인트 파일도 결국 뜯어보면 XML이거든요. 그 과정까지 자동화해서 슬라이드 만드는 시간을 10분의 1로 줄였습니다. 저는 지시만 내리고 디자인만 맡기는 거죠.
제가 토큰을 가장 많이 태울 때는 문서화 작업을 할 때입니다. 저희 제품인 Backend.AI의 문서 시스템 전체를 개편할 때 1,800쪽 분량의 PDF 문서를 만들었습니다. 코드를 기반으로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와 사용 사례를 문서화하고, 코드랩 자료까지 생성하게 시켰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는 배경 지식을 담은 박스를 넣으라고 지시했고요. 그 모든 작업을 이틀 만에 끝냈습니다. 사람이 언제 그걸 다 하겠어요?
물론 내용이 틀릴 수도 있으니 ‘클로드가 만들었으니, 제미나이가 리뷰해 봐’ 이런 식으로 서로 교차 검증을 시킵니다. 이렇게 서로 경쟁시키다 보니 토큰 사용량이 엄청나게 늘었고, 저는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시간 나면 해야지” 하고 미뤄뒀던 일이 많았거든요. 이제는 그 모든 걸 꺼내서 작동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클로드 종량제 시절에는 하루에 수백 달러씩 나올 정도였으니 월 200달러짜리 정액제로 바꿨죠. 200달러를 내면 5시간마다 토큰이 리필됩니다. 5시간 안에 할당량을 다 쓰면 5시간 후에 다시 채워지는 식이에요. 그런데 지난주부터는 주간 한도까지 생겼어요. 그래서 토큰을 안 쓰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요. 토큰이 누적되는 게 아니라 그냥 최대치로 채워지기만 하니까요.
그래서 모바일 게임 하는 분들의 심정을 알겠더라고요. 마치 숙제처럼 최대한 빨리 토큰을 써야 하는 거예요. 저는 40인치 모니터를 쓰는데, 보통 창을 6개씩 띄워놓고 작업합니다. 소위 **‘클로드 스쿼드’**라고 부르는데요. 모니터의 4분의 3 공간에 창 6개를 띄워놓고 각자 다른 일을 시키는 거죠. 그러면 약 1시간 반 만에 토큰을 다 소진해요. 그리고 잡니다. 알람을 맞춰놓고요.
[진행자] 일종의 위임(delegation)이네요.
[신정규] 엄청나죠. 한 가지 작업에 지시문을 쓰는 데 20분 정도 걸립니다. 컨텍스트가 계속 압축되기 때문에 프롬프트 자체도 정교하게 짜야 해요. 128k 토큰이 넘어가면 압축이 되거든요. 그래서 중간 결과물을 특정 마크다운 파일에 저장하라고 지시해서, 컨텍스트가 압축될 때마다 자동으로 다시 읽어오게 하는 식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합니다.
하나의 작업을 지시하는 데 10분씩 걸린다고 하면, 6개 작업을 시키면 글 쓰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는 셈이죠. 그러고 나면 AI들이 각자 일하는 동안 저는 잠을 잡니다. 앉아서요. 1시간 반 만에 토큰을 다 쓰고 나면 3시간 반 뒤에 다시 채워지니까, 새벽 4시에 리필된다면 알람을 맞춰놓는 거죠. 그렇게 쪽잠을 자다가 알람이 울리면, 멈췄던 작업은 ’계속’을 눌러 주고 끝난 작업에는 새로운 일을 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2주를 살았더니 몸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을 위임하는 패턴으로 바꾸고 나니 제가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지 경험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정말 즐겁습니다. 돈만 있다면 나를 위해 일하는 군단을 거느리는 기분이랄까요.
제미나이도 엄청나게 쓰고 있습니다. 클로드 토큰이 리필되기까지 3시간 반을 자야 했다면, 이제는 작업이 끝나면 제미나이에게 위임합니다. “이 작업은 클로드가 여기까지 했으니, 네가 이어서 마무리해.” 이런 식으로 두 모델이 탁구 치듯 일을 주고받게 설정해 놓고 저는 기다리는 거죠.
3. 토큰 사용량이라는 지표
[진행자] 그럼 요즘은 한 시간 단위가 아니라 더 긴 시간 단위로 위임하시나요?
[신정규] 할 일이 많은 사람은 하루 종일 돌릴 수도 있겠죠. 글 쓰는 분이라면 목차를 던져 주고 “자, 이제 각 챕터를 써봐. 다 쓰면 한글 버전도 만들고, 내용이 일치하는지, 어색한 표현은 없는지 검토해”라고 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프롬프트를 즉흥적으로 쓰지 않고 다 준비해 둡니다. 시스템 프롬프트가 4,000 토큰을 넘어가면 경고가 뜨는데, 저는 계속 그렇게 씁니다.
[진행자] GPT-5 시대에는 한 시간 이상의 작업을 맡기는 기능이 분명히 나오겠네요.
[신정규] 제가 한 달 반 정도 진지하게 작업한 all-smi라는 GPU 모니터링 도구가 있습니다. Rust로 만들어졌는데, 저는 Rust를 거의 모릅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절차를 자동화했습니다. /pr이라고만 입력하면 PR이 보내지고, /commit을 입력하면 커밋이 되고, /prepare release라고 하면 릴리스 초안이 만들어집니다. 릴리스에서 ’확인’만 누르면 데비안 패키지, 러스트 크레이트, 홈브루 패키지까지 자동으로 만들어지게끔 했습니다. 클로드에게 “자동화 코드를 만들어줘”라고 시켜서 GitHub 액션을 설정한 거죠. 지난 한 달 반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우울함을 극복하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자존감도 정말 높아졌어요. 물론 AI가 처음 짜준 코드는 조잡할 때가 많죠. 하지만 옆에서 “이건 이렇게 해보는 게 어때?” 하고 방향을 제시해 줄 때마다, 지난 30년간 프로그래머로 살아온 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껴요. 위기감보다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어차피 곧 모두에게 닥칠 일이니까요.
4. 정리하며
[진행자] 마지막에 우울함 극복기를 들으면서 청취자분들께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요즘 시대에는 토큰을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AI는 일종의 레버리지라고 하잖아요. 이 레버리지를 잘 활용하는지가 다음 시대에 당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으니, 철학적으로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정규] 어차피 올 거라면, 다 같이 즐깁시다.
이 대화에서 뽑을 메시지를 두 가지로 정리하면 이렇다.
“어차피 올 변화라면, 내가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겠다.”
“어차피 올 거라면, 다 같이 즐깁시다.”
그리고 이 부분도 되새겨 볼 만하다.
“토큰을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AI는 일종의 레버리지라고 하잖아요. 이 레버리지를 잘 활용하는지가 다음 시대에 당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으니, 철학적으로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