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언러닝 — 기본값을 다시 설계하는 일
AI 교육을 하고 도구를 배포하고 사용을 독려해도 업무 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몰라서가 아니라, 기존 평가 기준과 절차가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정답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분이 쓴 블로그 글 「우리가 알아야 할 Unlearning에 대한 모든 것」을 읽고 정리한 글입니다.
https://www.dajeong.tech/article-posts/unlearning-ai-era
AI 시대의 언러닝은 ’과거를 버리는 능력’이 아닙니다. 조직과 개인의 ’기본값’을 다시 설계하는 능력입니다.
AI 교육을 하고, 최신 도구를 배포하고, 전 직원에게 사용을 독려했는데도 업무 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을 몰라서일까요?
오히려 반대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기존의 평가 기준과 업무 절차, 승인 체계와 책임 구조가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정답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AI 전환을 ’무엇을 더 배울 것인가’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술이 크게 바뀌는 시기에는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더 이상 기본값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이 바로 언러닝(Un-learning)의 출발점입니다.
다만 언러닝은 학계에서도 완전히 합의된 단일 개념이 아닙니다. 최근 조직 언러닝 연구는 이를 지식을 선택적으로 지우는 행위보다,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지식·가정·루틴의 영향력을 의도적으로 줄여가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즉, 언러닝은 과거의 지식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방식이 자동으로 실행되지 않게 만드는 일입니다.
AI 시대의 언러닝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다섯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1. 언러닝은 배운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인지과학에서 소거 학습을 다룬 연구들도 기존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다기보다, 새로운 학습이 기존 반응의 발현을 억제한다고 설명합니다. 시간이 지나거나 환경이 달라지면 과거의 반응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 자료를 찾고, 사람이 처음부터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법을 잊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모든 업무에서 그 익숙하게 해 오던 방식을 그대로 선택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2. AI 시대에는 젊은 ’디지털 네이티브’가 무조건 유리하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곧 높은 디지털 역량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관련 연구에서는 젊은 세대도 주로 익숙하고 제한된 범위의 기술을 사용했으며, 기술 활용의 차이가 나이보다 전공이나 실제 사용 환경의 요구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세대 구분만으로 정보 검색력·판단력·창작 능력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서비스를 두려움 없이 눌러보는 능력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정의하고, 부족한 맥락을 발견하며, 결과의 오류와 현실성을 판단하는 능력은 별개의 자산입니다.
2026년 공개된 한 다국적 컨설팅 기업의 직원 2,257명 조사에서도 AI 사용률은 경력 1년 미만 62.0%, 10년 이상 53.5%로 차이가 크지 않았습니다. 직급별로는 오히려 디렉터급의 사용률이 70.4%로 가장 높았습니다. 단일 기업을 조사한 동료심사 전 연구라는 한계는 있지만, 적어도 ’연차가 높으면 AI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설명과는 맞지 않습니다. (https://arxiv.org/pdf/2602.23279)
AI 시대의 경쟁력은 나이보다 세 가지의 결합에서 나옵니다. 도구를 다루는 유연성, 문제를 구조화하는 경험, 결과를 판별하는 전문성입니다.
주니어와 시니어 가운데 누가 살아남을지를 묻는 것보다, 서로 다른 강점을 어떻게 결합할지를 묻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3. 모든 직원에게 같은 AI 교육을 제공하면 된다?
오히려 같은 교육이 누군가에게는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2025년 발표된 ‘전문성 역전 효과’ 메타분석은 60개 실험과 5,924명의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사전 지식이 부족한 학습자는 상세한 안내를 받을 때 더 잘 배웠지만, 사전 지식이 높은 학습자는 지나치게 많은 안내를 받을 때 학습 성과가 낮아졌습니다.
AI 교육도 숙련도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초보자에게는 안전한 예제와 단계별 안내, 결과를 확인하는 체크리스트가 필요합니다. 전문가에게는 기능 설명보다 실제 업무 문제, 기존 방식과의 비교 실험, 예외 상황, 품질 기준과 책임 범위를 직접 설계하게 하는 교육이 더 적합합니다.
4. 언러닝은 개인의 열린 태도에 달려 있다?
개인이 아무리 생각을 바꿔도 조직이 그대로라면 업무는 다시 과거로 돌아갑니다.
조직의 오래된 지식은 사람의 머릿속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고서 양식, 결재 단계, 성과지표, 직무기술서, 예산 항목, 접근 권한, 보안 정책, 품질 검수 방식과 조직 내 지위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AI로 세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을 사흘 동안 수행한 사람이 더 성실하다고 평가받는다면, 사람들은 다시 시간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돌아갑니다. AI 활용을 장려하면서 모든 초안 작성 과정을 사람이 직접 수행했다고 증명하도록 요구한다면, AI 교육은 실제 행동을 바꾸지 못합니다.
따라서 조직의 언러닝에는 ’새로 도입할 것’뿐 아니라 ’중단할 것’의 목록이 필요합니다.
- 어떤 절차를 폐기할 것인가?
- 어떤 양식과 승인 단계를 바꿀 것인가?
- 시간 투입이 아니라 무엇으로 품질을 측정할 것인가?
- AI가 수행한 부분을 어떻게 기록하고 검증할 것인가?
- 사람에게 남겨야 할 결정권과 책임은 무엇인가?
언러닝은 새로운 행동은 허용하면서 과거의 행동을 계속 보상하는 모순을 제거하는 조직 설계입니다.
5. 언러닝하려면 전문성을 내려놓고 AI를 믿어야 한다?
AI 시대에는 전문성이 덜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위치가 달라집니다.
Microsoft Research와 Carnegie Mellon University 연구진은 319명의 지식노동자가 제시한 936개의 실제 AI 활용 사례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AI의 능력을 더 신뢰할수록 비판적 사고를 적게 수행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업무 능력을 신뢰하는 사람은 AI 결과를 더 적극적으로 검토했습니다.
AI가 비판적 사고를 없앤다기보다 그 위치를 바꾼다는 결과도 중요합니다. 사람의 사고는 직접 생성하는 일에서 정보를 검증하고, 결과를 업무에 통합하고, 작업 전체를 감독하는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따라서 내려놓아야 할 것은 전문성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만들어야만 전문적인 결과다’라는 믿음입니다.
자료 수집과 초안 작성은 AI에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어떤 근거가 부족한지, 결과가 실제 상황에서 성립하는지, 어느 위험까지 허용할지는 여전히 전문성이 판단해야 합니다.
AI가 강해질수록 전문가는 실행자에서 설계자·검증자·책임자로 이동합니다.
무엇을 이제 그만할 것인가
결국 AI 시대의 언러닝은 다음과 같은 과정입니다.
기존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신호를 발견하고, 그 방식이 자동 실행되는 조건을 찾아내고, 새로운 행동을 작은 범위에서 실험하고, 속도뿐 아니라 품질과 위험까지 비교하고, 검증된 방식을 조직의 새로운 기본값으로 만드는 것.
AI 전환의 핵심은 새로운 도구를 계속 더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낡은 규칙을 중단하지 않은 채 새로운 도구만 추가하면, 조직에는 업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업무+AI 업무’라는 이중 부담이 생깁니다.
그래서 AI를 도입하는 조직은 “무엇을 새로 배울 것인가?“와 함께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무엇을 이제 그만할 것인가?”
언러닝의 대상은 과거의 경험이 아닙니다. 과거의 경험만을 정답으로 만드는 기본값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