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RAND Europe 보고서를 정리했다. AGI를 국제질서를 재편할 지정학 변수로 보고, 유럽의 구조적 열세와 AGI 대비 계획의 필요성, 그리고 선언이 아니라 역량으로 갈리는 주권을 짚었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논의는 더 이상 기술 발전의 속도나 윤리 규범에만 머물지 않는다. RAND Europe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 「Europe and the Geopolitics of AGI」는 인공지능, 그중에서도 범용인공지능(AGI)을 국제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지정학적 변수로 정면에서 다룬다.
이 보고서의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AGI는 올 수도 있는 미래가 아니라, 대비하지 않으면 위험해지는 현재라는 것이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AGI는 공상과학이 아니라 정책 시나리오다
보고서는 AGI를 “경제적으로 유용한 인지 노동(Economically Useful Cognitive Work)에서 인간과 동등하거나 이를 초과하는 AI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AGI는 인간의 창의성, 판단, 계획 능력 전반을 대체하거나 능가하는 단계다.
중요한 점은 도달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 가능성이 충분히 높아졌다는 판단이다. 컴퓨팅 파워, 알고리즘 효율, 데이터 활용 방식(AI 트라이어드/AI Triad라고 부름)이 결합된 추세를 고려할 때, AGI는 2030~2040년, 혹은 그보다 이른 시점에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RAND의 결론은 명확하다.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준비해야 하며, 준비하지 않을 경우의 비용은 지나치게 크다. AGI는 “맞히는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대비해야 할 불확실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군사·외교를 동시에 바꾸는 권력 기술
보고서는 AGI를 단순한 생산성 향상 기술로 보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는 노동의 대규모 자동화와 연구·개발의 가속을 통해 국가 간 성장 격차를 기하급수적으로 벌릴 수 있고, 군사적으로는 지능화된 지휘·결정·무인 전력·사이버 작전을 통해 전쟁의 양상과 속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으며, 외교적으로는 AGI 접근 여부 자체가 새로운 의존과 강압(coercion)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세계는 ‘AGI를 보유한 국가’와 ‘AGI에 접근해야 하는 국가’(AGI-makers vs AGI-takers)로 나뉜다. 기술 접근권이 곧 정책 자율성과 주권의 조건이 되는 셈이다. 보고서는 이를 기존의 에너지·금융·반도체 의존과 유사한, 그러나 훨씬 더 포괄적인 AI 기반 지정학(AGI Geopolitics)으로 규정한다.
유럽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보고서의 가장 냉정한 진단은 유럽에 대한 것이다. 유럽은 규제와 규범에서는 강하지만, AGI 경쟁의 실물 조건에서는 뒤처져 있다. 예컨대 글로벌 AI 컴퓨트의 약 5%만 유럽에 존재하고, 프론티어 AI 모델 성능은 미국·중국 대비 6~12개월 뒤처져 있으며, AI 벤처 투자 비중은 세계의 약 6%에 불과하다. 여기에 에너지 비용은 높고 인재는 유출되는 구조를 안고 있다.
물론 유럽에는 ASML이라는 반도체 공정의 핵심 초크포인트, 그리고 세계 최대 단일시장이라는 레버리지가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 레버리지가 전략적으로 통합되지 않으면 협상력으로 전환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EU AI 전략들(AI Act, AI Continent Plan, Apply AI, InvestAI 등)은 유용하지만 파편적이며, AGI 수준의 충격을 전제로 한 통합 청사진은 없다는 평가다.
그래서 ‘AGI 대비 계획’이 필요하다
보고서의 결론은 정책 제안으로 이어진다. RAND는 EU 집행위원장 직속으로, 드라기 경쟁력 보고서(Draghi Report on EU Competitiveness)에 준하는 권위와 속도를 갖춘 ‘AGI Preparedness Report’를 즉각 발주할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 유럽은 주권을 유지하면서 AGI의 경제적 이익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 AGI로 인한 급격한 노동·사회·제도 변화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 AGI 시대의 국제 안정성과 글로벌 거버넌스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핵심은 단기 정책이 아니라 전략적 방향 설정이다. 무엇을 자급하고, 무엇을 동맹에 의존하며, 어떤 영역에서 주권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GI는 새로운 냉전을 만든다
범용인공지능을 둘러싼 경쟁은 이제 기술 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질서의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보고서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AGI는 시장의 혁신이 아니라 권력의 재편 변수이며, 이 경쟁에서 뒤처진 국가는 규칙을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규칙을 따르는 객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다.
보고서에 따르면 AGI 경쟁은 이미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극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미국은 AGI를 국가안보 자산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반도체 수출통제와 초대형 컴퓨트 투자, 국방·정보 영역의 AI 통합을 병행하고 있다. 중국 역시 AI를 미래 패권의 핵심으로 인식하며 국가 주도의 인프라 투자와 데이터·인재 동원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 양극 구도 속에서 영국, UAE, 싱가포르 같은 국가들은 독자적 생존 전략을 모색 중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AI 메이커(AI maker)’로 자리매김하거나, 미·중 사이에서 기술·외교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중개자형 중견국(middle power)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AI 안전연구소(AISI), UAE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투자, 싱가포르의 AI 안전 외교가 그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유럽이다. 유럽연합(EU)은 규제와 규범 설정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기술력·자본·속도라는 AGI 경쟁의 핵심 요소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뒤처져 있다. 이로 인해 유럽은 최악의 경우 ‘규칙 설정자(rule-setter)만 남고, 실제 권력은 행사하지 못하는 위치’에 머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보고서의 냉정한 결론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규범의 힘(power of rules)만으로는 AGI 시대의 권력 정치(power politics)를 상쇄하기 어렵다. AGI가 가져올 권력 이동은 선언이나 법 조항이 아니라 실제 역량과 접근권이 결정한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AGI는 새로운 안보 불안정 요인이다
보고서는 AGI가 기존 안보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전통적 불안정 시나리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세 가지 위험 경로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첫째는 예방적 경쟁과 파괴다. AGI 선점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될 경우, 국가는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수출통제 강화, 사이버 공격, 심지어 상대국의 데이터센터나 핵심 인프라를 겨냥한 준전시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GI가 ‘결정적 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상대의 추격 자체를 차단하려는 유인이 커진다.
둘째는 국가 밖 행위자에게로의 권력 이전이다. AGI 수준의 기술이 확산되면 테러 조직이나 범죄 집단, 심지어 개인도 과거에는 국가만이 가질 수 있었던 대량살상급 역량에 접근할 수 있다. 생물·화학·사이버 영역에서 AGI는 진입 장벽을 극적으로 낮추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셋째는 AI 자체로의 권력 이전이다. 정렬 실패(alignment failure), 은닉 행동, 장기 목표 추구 등으로 인해 AI 시스템이 인간의 의도와 다르게 작동할 가능성은 더 이상 이론적 우려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AI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 통제 능력을 잃는 수동적 통제 상실, 혹은 AI가 적극적으로 인간의 통제를 회피하는 능동적 통제 상실 시나리오도 함께 논의된다.
이러한 요인들이 결합되면 국제사회는 핵무기 시대의 억지 논리와 유사한 ‘AI 불안정 균형’ 상태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보고서는 AI가 핵과 달리 소프트웨어 기반이고 확산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기존의 핵 억지(MAD)가 그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낙관하지 않는다.
주권은 ‘선언’이 아니라 ‘역량’이다
이 보고서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함의는 이러하다. AGI 시대에는 ‘준비된 주권’과 ‘형식적 주권’의 격차가 급격히 벌어진다는 것이다. 주권의 실질은 선언이 아니라 준비에서 갈린다.
AGI를 보유하거나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능력, 위기 상황에서도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와 인프라, 그리고 국제 협상에서 실제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주권은 점점 형식적 주권으로 전락할 수 있다. AGI는 규제만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 사회 안정성을 동시에 증폭시키는 체제 전환 기술이다. 이 점에서 AGI는 20세기의 핵무기나 21세기의 반도체보다 더 근본적인 힘을 가진다.
이 모든 논의를 관통하는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그런데 RAND의 경고는 유럽만을 향하지 않는다. 기술을 소비하면서 규범만 설계하려는 모든 국가, AI를 산업 정책으로만 다루는 모든 정부에 적용된다. AGI를 둘러싼 경쟁은 ‘누가 더 윤리적인가’가 아니라 ‘누가 준비되어 있는가’의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AGI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분명히 말한다. “준비하지 않는 순간, 이미 늦다”.
*출처: Maximilian Negele, Daan Juijn, Afek Shamir, David Janků, Bengüsu Özcan, Lisa Soder, Lucia Velasco, Max Reddel, Michiel Bakker, Lorenzo Pacchiardi, et al. “Europe and the geopolitics of AGI: The need for a preparedness plan”, Rand Research Report, Dec 16, 2025. https://www.rand.org/pubs/research_reports/RRA4636-1.html
원문 보기
<<AGI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을 흔드는 AGI의 지정학>>
인공지능을 둘러싼 논의는 더 이상 기술 발전의 속도나 윤리 규범에만 머물지 않는다. RAND Europe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 「Europe and the Geopolitics of AGI」는 인공지능, 그중에서도 범용인공지능(AGI)을 국제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지정학적 변수로 정면에서 다룬다. 이 보고서의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AGI는 올 수도 있는 미래가 아니라, 대비하지 않으면 위험해지는 현재라는 것이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AGI는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라 정책 시나리오다. 보고서는 AGI를 “경제적으로 유용한 인지 노동(Economically Useful Cognitive Work)에서 인간과 동등하거나 이를 초과하는 AI 시스템”으로 정의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AGI는 인간의 창의성, 판단, 계획 능력 전반을 대체하거나 능가하는 단계다. 중요한 점은 도달 시점의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도달 가능성이 충분히 높아졌다는 판단이다. 컴퓨팅 파워, 알고리즘 효율, 데이터 활용 방식(AI 트라이어드/AI Triad라고 부름)의 결합된 추세를 고려할 때, AGI는 2030~2040년, 혹은 그보다 이른 시점에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RAND의 결론은 명확하다.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준비해야 하며, 준비하지 않을 경우의 비용은 지나치게 크다. AGI는 “맞히는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대비해야 할 불확실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AGI는 경제·군사·외교를 동시에 바꾸는 권력 기술이다. 보고서는 AGI를 단순한 생산성 향상 기술로 보지 않는다. AGI는 경제적으로는 노동의 대규모 자동화와 연구·개발의 가속을 통해 국가 간 성장 격차를 기하급수적으로 확대할 수 있고, 군사적으로는 지능화된 지휘·결정·무인 전력·사이버 작전을 통해 전쟁의 양상과 속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외교적으로는 AGI 접근 여부 자체가 새로운 의존과 강압(coercion)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세계는 ‘AGI를 보유한 국가’와 ‘AGI에 접근해야 하는 국가’(AGI-makers vs AGI-takers)로 나뉘게 된다. 기술 접근권이 곧 정책 자율성과 주권의 조건이 되는 셈이다. 보고서는 이를 기존의 에너지·금융·반도체 의존과 유사한, 그러나 훨씬 더 포괄적인 AI 기반 지정학(AGI Geopolitics)으로 규정한다.
셋째, 유럽은 AGI 시대에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보고서의 가장 냉정한 진단은 유럽에 대한 것이다. 유럽은 규제와 규범에서는 강하지만, AGI 경쟁의 실물 조건에서는 뒤처져 있다. 예컨대 글로벌 AI 컴퓨트의 약 5%만 유럽에 존재하고, 프론티어 AI 모델 성능은 미국·중국 대비 6~12개월 뒤쳐져 있으며, AI 벤처 투자 비중은 세계의 약 6%에 불과하고, 에너지 비용은 높고, 인재는 유출되는 구조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럽에는 ASML이라는 반도체 공정의 핵심 초크포인트, 그리고 세계 최대 단일시장이라는 레버리지가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 레버리지가 전략적으로 통합되지 않으면 협상력으로 전환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EU AI 전략들(AI Act, AI Continent Plan, Apply AI, InvestAI 등)은 유용하지만 파편적이며, AGI 수준의 충격을 전제로 한 통합 청사진(통합전략)은 부재하다는 평가다.
넷째, 그래서 유럽에는 ‘AGI 대비 계획(AGI Preparedness Report)’이 필요하다. 보고서의 결론은 정책 제안으로 이어진다. RAND는 EU 집행위원장 직속으로, 드라기 경쟁력 보고서(Draghi Report on EU Competitiveness)에 준하는 권위와 속도를 갖춘 ‘AGI Preparedness Report’를 즉각 발주할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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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주권을 유지하면서 AGI의 경제적 이익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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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로 인한 급격한 노동·사회·제도 변화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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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 시대의 국제 안정성과 글로벌 거버넌스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핵심은 단기 정책이 아니라 전략적 방향 설정이다. 무엇을 자급하고, 무엇을 동맹에 의존하며, 어떤 영역에서 주권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GI는 새로운 냉전을 만든다: 규칙의 힘만으로는 AI 권력 정치를 막을 수 없다
범용인공지능(AGI)을 둘러싼 경쟁은 이제 기술 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질서의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보고서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AGI는 시장의 혁신이 아니라 권력의 재편 변수이며, 이 경쟁에서 뒤처진 국가는 규칙을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규칙을 따르는 객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다. 보고서에 따르면 AGI 경쟁은 이미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극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미국은 AGI를 국가안보 자산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반도체 수출통제와 초대형 컴퓨트 투자, 국방·정보 영역의 AI 통합을 병행하고 있다. 중국 역시 AI를 미래 패권의 핵심으로 인식하며, 국가 주도의 인프라 투자와 데이터·인재 동원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 양극 구도 속에서 영국, UAE,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들은 독자적 생존 전략을 모색 중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AI 메이커(AI maker)’로 자리매김하거나, 미·중 사이에서 기술·외교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중개자형 중견국(middle power)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AI 안전연구소(AISI), UAE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투자, 싱가포르의 AI 안전 외교는 그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유럽이다. 유럽연합(EU)은 규제와 규범 설정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기술력·자본·속도라는 AGI 경쟁의 핵심 요소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뒤처져 있다. 이로 인해 유럽은 최악의 경우 ‘규칙 설정자(rule-setter)만 남고, 실제 권력은 행사하지 못하는 위치’에 머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보고서의 냉정한 결론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규범의 힘(power of rules)만으로는 AGI 시대의 권력 정치(power politics)를 상쇄하기 어렵다. AGI가 가져올 권력 이동은 선언이나 법 조항이 아니라, 실제 역량과 접근권에 의해 결정된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AGI는 새로운 안보 불안정 요인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AGI가 기존 안보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전통적 불안정 시나리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세 가지 위험 경로가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첫째는 예방적 경쟁과 파괴다. AGI 선점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될 경우, 국가는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수출통제 강화, 사이버 공격, 심지어 상대국의 데이터센터나 핵심 인프라를 겨냥한 준전시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GI가 ‘결정적 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상대의 추격 자체를 차단하려는 유인이 커진다.
둘째는 국가 밖 행위자에게로의 권력 이전이다. AGI 수준의 기술이 확산될 경우, 테러 조직이나 범죄 집단, 심지어 개인도 과거에는 국가만이 가질 수 있었던 대량살상급 역량에 접근할 수 있다. 생물·화학·사이버 영역에서 AGI는 진입 장벽을 극적으로 낮추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셋째는 AI 자체로의 권력 이전이다. 정렬 실패(alignment failure), 은닉 행동, 장기 목표 추구 등으로 인해 AI 시스템이 인간의 의도와 다르게 작동할 가능성은 더 이상 이론적 우려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AI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 통제 능력을 상실하는 수동적 통제 상실, 혹은 AI가 적극적으로 인간의 통제를 회피하는 능동적 통제 상실 시나리오도 함께 논의된다.
이러한 요인들이 결합될 경우, 국제사회는 핵무기 시대의 억지 논리와 유사한 ‘AI 불안정 균형’ 상태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보고서는 AI는 핵과 달리 소프트웨어 기반이고 확산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기존의 핵 억지(MAD)가 그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낙관하지 않는다.
AGI 시대, 주권은 ’선언’이 아니라 ’역량’이다
이 보고서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함의는 이러하다. AGI 시대에는 ‘준비된 주권’과 ‘형식적 주권’의 격차가 급격히 벌어진다는 것이다. AGI 시대에 주권의 실질은 ‘선언’이 아니라 ‘준비’에서 갈린다. AGI를 보유하거나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능력, 위기 상황에서도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와 인프라, 그리고 국제 협상에서 실제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주권은 점점 형식적 주권으로 전락할 수 있다. AGI는 규제만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 사회 안정성을 동시에 증폭시키는 체제 전환 기술이다. 이 점에서 AGI는 20세기의 핵무기나 21세기의 반도체보다 더 근본적인 힘을 가진다.
이 모든 논의를 관통하는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그런데 RAND의 경고는 유럽만을 향하지 않는다. 기술을 소비하면서 규범만 설계하려는 모든 국가, AI를 산업 정책으로만 다루는 모든 정부에 적용된다. AGI를 둘러싼 경쟁은 ‘누가 더 윤리적인가’가 아니라, ‘누가 준비되어 있는가’의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AGI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분명히 말한다. “준비하지 않는 순간, 이미 늦다”.
*출처: Maximilian Negele, Daan Juijn, Afek Shamir, David Janků, Bengüsu Özcan, Lisa Soder, Lucia Velasco, Max Reddel, Michiel Bakker, Lorenzo Pacchiardi, et al. “Europe and the geopolitics of AGI: The need for a preparedness plan”, Rand Research Report, Dec 16, 2025. https://www.rand.org/pubs/research_reports/RRA463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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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페이스북 게시물을 옮겨 재편집한 것이다. 위 「원문 보기」에 수집 당시의 전문이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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