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순응을 요구했고 기업은 신뢰를 줬다
팔란티어가 고졸 22명을 뽑아 곧바로 실전에 투입했다. 대학이 3년 뒤에야 주는 역할을 기업이 3일 만에 맡긴 이유를 짚으면서도, 고등교육이 기업 효용 중심으로 재편될 위험에 답답해했다.

이 기사는 팔란티어(Palantir)의 고졸 채용 및 펠로우십 정책이 대학교육에 미치는 파장을 다룬 것이다. 요점은 팔란티어가 고등학교 졸업생 22명을 선발해 대학을 건너뛰고 곧바로 실전 프로젝트에 투입했다는 것인데, 이는 단순한 파격 채용이 아니다. 이는 대학이 더 이상 청년들의 성장 경로의 ‘기본값’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는 명문대 합격자를 포함해 수백 명의 청년이 몰렸고, 이들 중 상당수는 장학금과 입학 허가를 뒤로한 채 팔란티어를 선택했다. 왜일까?
대학은 3년, 기업은 3일
기사에 의하면, 그들이 학교보다 기업을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순응과 절차였고, 팔란티어가 제공한 것은 신뢰와 책임이었다. 대학에서는 3년을 기다린 뒤에야 맡을 수 있는 역할을, 기업은 3일 만에 부여했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었다.
청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날 대학이 제공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연된 성장, 경험이 아니라 형식적 과정, 도전이 아니라 관리된 안전함이라는 것을.
팔란티어는 그 공백을 파고들었다
팔란티어는 이 공백을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짧지만 고전·사상·역사를 다루는 세미나로 사고의 기반을 제공하고, 곧바로 병원·정부·국방 고객이 참여하는 실전 데이터 문제로 투입한다. 대학이 잃어버린 긴장감, 속도, 실전성을 이들은 그곳에서 만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조직이 나를 믿는다”는 감각을 경험했다. 이는 어떤 명문대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답답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은 대학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이 더 이상 자동으로 선택받는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청년들은 ‘학위’가 아니라 ‘성장’을 찾는다. ‘등록금’이 아니라 ‘기회’를 찾는다. ‘절차’를 넘어 ‘실전’을 원한다.
이 요구에 대학이 답하지 못하고 기업이 대신 답하기 시작할 때, 고등교육의 기본 경로는 자연스럽게 재편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결국 고등교육이 ‘시민성·사유·공공성’ 대신 ‘기업 즉시효용성’ 중심으로 재편될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답답하다.
원문 보기
<<청년들이 더 이상 대학을 기본 경로로 선택하지 않는 이유: ‘팔란티어 실험‘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
이 기사는 팔란티어(Palantir)의 고졸 채용 및 펠로우십 정책이 대학교육에 미치는 파장을 다룬 것이다. 요점은 팔란티어가 고등학교 졸업생 22명을 선발해 대학을 건너뛰고 곧바로 실전 프로젝트에 투입했다는 것인데, 이는 단순한 파격 채용이 아니다. 이는 대학이 더 이상 청년들의 성장 경로의 ‘기본값’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는데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는 명문대 합격자를 포함해 수백 명의 청년이 몰렸고, 이들 중 상당수는 장학금과 입학 허가를 뒤로한 채 팔란티어를 선택했다. 왜일까?
기사에 의하면, 그들이 학교보다 기업을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대학이 요구하는 것은 순응과 절차였고, 팔란티어가 제공한 것은 신뢰와 책임이었다. 대학에서는 3년을 기다린 뒤에야 맡을 수 있는 역할을, 기업은 3일 만에 부여했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었다. 청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날 대학이 제공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연된 성장, 경험이 아니라 형식적 과정, 도전이 아니라 관리된 안전함이라는 것을.
팔란티어는 이 공백을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짧지만 고전·사상·역사를 다루는 세미나로 사고의 기반을 제공하고, 곧바로 병원·정부·국방 고객이 참여하는 실전 데이터 문제로 투입한다. 대학이 잃어버린 긴장감, 속도, 실전성을 이들은 그곳에서 만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조직이 나를 믿는다”는 감각을 경험했다. 이는 어떤 명문대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은 대학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이 더 이상 자동으로 선택받는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청년들은 ‘학위’가 아니라 ‘성장’을 찾는다. ‘등록금’이 아니라 ‘기회’를 찾는다. ‘절차’를 넘어 ‘실전’을 원한다. 이 요구에 대학이 답하지 못하고 기업이 대신 답하기 시작할 때, 고등교육의 기본 경로는 자연스럽게 재편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결국 고등교육이 ‘시민성·사유·공공성’ 대신 ‘기업 즉시효용성’ 중심으로 재편될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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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페이스북 게시물을 옮겨 재편집한 것이다. 위 「원문 보기」에 수집 당시의 전문이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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