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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태 아카이브
논평3분 분량

27년 만에, 순간 눈물이 났다

석사 시절 은사 박호성 교수의 출판기념회에 갔다. 박사과정에서 지도교수를 바꾼 뒤 ‘탈영병’이자 ‘학문적 배신자’였던 제자가 27년 만에 스승 앞에 서면서, 참으려 해도 눈물이 났던 저녁의 기록.

27년 만에, 순간 눈물이 났다 게시물에 첨부된 사진

나의 석사 대학원 시절 은사님 박호성 교수님 출판기념회.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평등론’, ‘휴머니즘론’, ‘공동체론’에 이은 대작 “사회주의 사상사”를 최근에 펴내셨다.

조희연 선생님이 무조건 오라고 해서 갔지만 박 선생님은 나의 방문을 예상치 못하셨던 눈치였다. 조희연 선생님이, 그리고 사랑하는 사회평론 후배이자 한겨레 편집인 김영희가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안 갔을지도 모른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나는 오랜만에 아양을 떨며 박 선생님에 대한 반가움과 존경심을 표하니까, 자연스럽게 나를 받아주시는 것 같았다. 갑자기 명함을 달라고 하셨다.

27년 전의 불호령

참으려고 했는데, 순간 눈물이 났다. 석사 시절 스승님이지만 박사과정 도중에 지도교수를 고 강정인 교수님으로 바꾼 나는 박호성 선생님에게는 ‘탈영병’, ‘학문적 배신자’였고, 오랫동안 날 쳐다보지도 않으셨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사회주의자 지도교수에서 자유주의자 지도교수로 바꾸었던 셈이다. 어느 날 나보고 너 필요 없다, 지도교수를 바꾸라고 불호령하신 지가 1998년이니까 거의 27년이나 되었다.

이제 나이 드셔서 그런가, 호랑이같은 엄격한 기운은 여전하지만 예전만 못하게 부드러워지셨다. 그 덕분에 나를 포용하신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애써 참았다. 탕아이자 배신자 같은 제자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저자 사인에다가 ‘새끼’를 붙이셨다^^. 내가 그렇게 써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대로 쓰셨다^^.

사회평론이라는 인연

오늘 출판기념회가 사회평론에서 마련해준 덕분에, 나는 1년 가까이 신 사회평론 기자라는 이유로 사회평론이라는 거대한 진보지성 네트워크의 한복판에 함께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었다. 그 덕분에 오늘 함께 축하하러 와주신, 사회평론 창간에 관여했던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 선생님까지 뵙게 되었다. 덕분에 유홍준 선생님이 APEC 정상회의 때문에 준비하신 문화재 관련 새 책도 얻었다.

유홍준 선생님은 세상이 알아주는 ‘구라’로 유명하시다. ‘사회평론 패망사’를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사그라든 저녁

그런데도 나는 박호성 선생님의 편안하지만 뭔지 모를 ‘나이 듦’에 해탈하신 얼굴에 자꾸 시선이 갔다. 내가 너무 늦게 선생님을 뵈었다는 회한과 죄송함이 밀려들었다.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수십 년 동안 내 인생의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오늘 사그라드는,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든 저녁이었다.

뜻깊은 자리 마련해주신 사회평론 윤철호 사장님, 한때 사회주의자셨는데 출판자본가로 성공하신 현재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꾸준히 인문사회 학술서를 출간해주는 몇몇 안 되는 출판사장님이다. 박 교수님을 위해 좋은 자리 마련해주셔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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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순간 눈물이 났다 첨부 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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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석사 대학원 시절 은사님 박호성 교수님 출판기념회.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평등론’, ‘휴머니즘론’, ‘공동체론’에 이은 대작 “사회주의 사상사”를 최근에 펴내셨다. 조희연 선생님이 무조건 오라고 해서 갔지만 박선생님은 나의 방문을 예상치 못하셨던 눈치였다. 조희연 선생님이, 그리고 사랑하는 사회평론 후배이자 한겨레 편집인 김영희가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안갔을지도 모른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나는 오랜만에 아양을 떨며 박선생님에 대한 반가움과 존경심을 표하니까 자연스럽게 나를 받아주시는 것 같았다. 갑자기 명함을 달라고 하셨다.

참으려고 했는데, 순간 눈물이 났다. 석사 시절 스승님이지만 박사과정 도중에 지도교수를 고 강정인 교수님으로 바꾼 나는 박호성 선생님에게는 ‘탈영병’, ’학문적 배신자’였고 오랫동안 날 쳐다보지도 않으셨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사회주의자 지도교수에서 자유주의자 지도교수로 바꾸었던 셈이다. 어느날 나보고 너 필요없다, 지도교수를 바꾸라고 불호령하신 지가 1998년이니까 거의 27년이나 되었다.

이제 나이 드셔서 그런가, 호랑이같은 엄격한 기운은 여전하지만 예전만 못하게 부드러워지셨다. 그 덕분에 나를 포용하신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애써 참았다. 탕아이자 배신자 같은 제자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저자 사인에다가 ’새끼’를 붙이셨다^^. 내가 그렇게 써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대로 쓰셨다^^.

오늘 출판기념회가 사회평론에서 마련해준 덕분에 나는 1년 가까이 신 사회평론 기자라는 이유로 사회평론이라는 거대한 진보지성 네트워크의 한복판에 함께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었다. 그 덕분에 오늘 함께 축하하러 와주신 사회평론 창간에 관여했던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 선생님까지 뵙게 되었다. 덕분에 유홍준 선생님이 APEC 정상회의 때문에 준비하신 문화재 관련 새 책도 얻었다. 유홍준 선생님은 세상이 알아주는 ‘구라’로 유명하시다. ’사회평론 패망사’를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박호성 선생님의 편안하지만 뭔지 모를 ’나이 듦’에 해탈하신 얼굴에 자꾸 시선이 갔다. 내가 너무 늦게 선생님을 뵈었다는 회한과 죄송함이 밀려들었다.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수십 년 동안 내 인생의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오늘 사그라드는,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든 저녁이었다.

뜻깊은 자리 마련해주신 사회평론 윤철호 사장님, 한때 사회주의자셨는데 출판자본가로 성공하신 현재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꾸준히 인문사회 학술서를 출간해주는 몇몇 안되는 출판사장님이다. 박교수님을 위해 좋은 자리 마련해주셔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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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페이스북 게시물을 옮겨 재편집한 것이다. 위 「원문 보기」에 수집 당시의 전문이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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